수인선 전철은 알아도 수인선 협궤열차는 모르는 이가 많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의 애환을 싣고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열차다. 1995년 이용객이 줄어들며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가 2012년 6월 말 쾌적한 복선 전철로 부활했다. 수인선의 중심에 소래포구라는 여행지가 있다. 별미거리 풍부한 가을날, 수인선을 타고 소래역사관과 소래포구를 만나 본다.
손님이 열차 밀고 고개 넘던 시절
수인선 역사 영상물
수원과 인천을 하나로 이어주던 열차라서 '수인선'이다. 1937년 8월 6일 운행을 시작한 수인선 협궤열차는 60년 가까이 서민들의 발 노릇을 하다가 1995년 12월 31일 소임을 다하고 사라졌다. 소래역사관의 수인선 영상물 앞에 서면 이런 내레이션을 친절하게 들을 수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 버스보다 좁은 2m 남짓의 폭에 서로 마주보고 앉은 승객들은 열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 맞은편 사람과 무릎이 닿기도 했답니다. 크기가 작다 보니 힘이 달려 안산 원곡고개 등지에선 손님이 내려서 걷거나 열차를 밀어야 했던 이야기도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었습니다."
해설자의 음성은 차분한데 흑백 화면 속의 그림들은 가끔 웃음을 자아낸다. ‘개그콘서트’ 세대는 ‘웃으면 복이 와요’ 시대의 흔적을 보면서 수인선의 숨은 매력을 깨닫는다. 내레이션은 조금 더 길게 이어진다.
"또 송도역 주변에서는 협궤열차를 타고 농수산물을 파는 반짝시장이 유명했습니다. 소래의 아낙들이 갓 잡은 싱싱한 수산물과 젓갈, 인근 농촌에서 가꾼 채소들을 열차에 싣고 올라 송도역 앞에서 장을 벌였지요. 젓갈을 인 아낙들이 열차에 오르면 객차 안은 순식간에 갯내로 가득 찼습니다."
전철 안에도 바다 내음 물씬
송도역의 반짝시장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갯내는 지워지지 않았다. 소래포구를 다녀온 어르신들이 저마다 꽃게, 대하, 생선, 조개 등을 한 상자씩 들고 타면서 최신 수인선 전철 안에도 주말이면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긴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로 반짝거리는 최신식 전철 안과 역사 안의 공중화장실에도,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에도 진득하게 배어 있다. 그렇다고 미간을 찌푸리진 말자. 그게 사람 살아가는 냄새니까.
소래포구역 내부 |
도로변에 전시된 협궤용 증기기관차 |
수원, 안산, 월곶포구, 소래포구, 송도역, 인천에 살던 서민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수인선 협궤열차는 왜 수명을 다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1970년대부터 다양한 노선을 누비는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널리 등장했기 때문이다. 버스가 대중교통의 축으로 성장하면서 서울에서도 전차가 사라지지 않았는가. 수인선 이용자는 버스로 옮겨갔고 그에 비례하여 수인선 운행 구간은 차츰 짧아졌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마침내 1995년 12월 31일, 추운 겨울바람 몰아치는 소래철교(지금의 소래인도교) 위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다. 당시 세월을 이끌던 기관차와 비슷한 기차가 지금 소래역사관 앞마당, 소래포구 입구 맞은편에 전시되어 있다. 이 검은 물체는 소래포구를 오가는 모든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사진의 오브제가 되어준다. 안내문 역시 협궤열차를 닮아 손바닥만 한 크기이다.
“이 기관차는 1927년 조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용 증기 기관차이다. (…) 1978년까지 운행되었다. (…) 대관령휴게소에 전시하여 왔으나 시민들의 염원 속에 인천 귀향을 추진하게 되었고, (…) 2008년 7월 6일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기관차가 무슨 일로 예전의 영동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올라갔던 것일까.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기념물이다.
조개탄 피우던 옛 대합실의 추억
옛 소래역사 내부 모형
소래포구로 어서 향하고 싶은 욕심을 꾹 누르고 소래역사관 안으로 들어간다. 2층 전시실은 소래역사와 대합실을 통과해서 소래갯벌 존, 수인선 존을 둘러보도록 했다. 1층은 소래염전 존, 소래포구 존, 협궤열차 탑승 존으로 구성되었다. 2층부터 관람하고 1층으로 내려오게끔 동선이 짜여 있다.
벽돌로 외벽을 쌓아 올린 소래역에서는 중앙의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세로로 긴 창문이 2개씩 대칭을 이루고 있다. 옆으로 드르륵 밀어야 하는 미닫이 출입문 위에는 ‘소래역’이라는 역명이 소박한 굴림체로 씌어 있다. 대합실에는 조개탄 난로 하나, 나무의자 하나, 그리고 보따리 하나 옆에 끼고 벤치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있다. 왼발은 고무신을 벗은 채 나무의자 위에 올려놓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할머니의 행선지는 수원역 방향일까, 인천항역 방향일까?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는 표정이다.
이번에는 매표소 쪽을 관찰해 보자. 유리문 안쪽에 역무원 한 명, 전화기 두 대, 철제 책상, 영화 포스터 두 장. 모두가 그림 속에 있어도 옛날 느낌은 그럭저럭 전해진다. 매표소 위에는 ‘열차시간표’가 자리를 차지했다. 인천항역-소래역-수원역 간의 요금과 운행 시각이다. 여행자들은 그 표를 더듬으며 부모 세대가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즐겁게 건너온 시간을 반추한다. 수원역 방향 첫차 8시 10분, 막차 5시 50분. 그 때는 하루가 그렇게 짧았던가. 새벽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운행되는 서울역이나 부산역의 KTX 시간표에서는 결코 전해지지 않는 온기가 느껴진다. 소래역사는 1937년 수인선 등장과 때를 맞춰 생겨난 이후 1994년 문을 닫았다가 2008년에 사라졌으며, 지금 그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서 있다. 몇 장의 기록사진과 괘종시계가 옛 소래역의 존재를 증명한다.
흔들리면 무릎이 닿던 자그만 기차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 온갖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했다. 일반 철도보다 폭이 좁은 협궤선은 1931년 12월에 수여선(73.4km)과 1937년 8월에 수인선(52km) 2개 노선으로 개통되었다. 수여선은 이천과 여주 지방의 곡식을 서울로 나르기 위해 건설됐으며, 수인선은 수여선을 인천항까지 연결하여 군량미와 경기만 염전지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설됐다. 1층에 설치된 탑승 체험 협궤열차에 들어가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손을 뻗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으니 '칙칙폭폭, 흔들흔들 덜컹덜컹' 할 때마다 정말 무릎이 닿을 수도 있었겠다.
협궤열차 탑승 체험 |
소래인도교와 새 소래철교 |
그 시절 추억이 그리운 여행객들은 이후 수인선 기적 소리가 사라진 빈 철길을 두 발로 걸어 다녔다. 특히 소래포구 앞에 놓인 폭 좁은 소래철교(지금의 소래인도교, 길이 126.5m)는 단골 산책로였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만큼 폭이 좁은 다리 아래로 밀물이 들어오면 서해로 나가서 꽃게며 새우를 잡은 통통배들이(지금과 같은 선외기가 아니라 속도가 느리다) 앞다퉈 들어왔고, 교량 위의 사람들은 만선의 꿈을 이룬 배들을 맞이하며 덩달아 기뻐했다.
소설가 윤후명 선생은 1992년 수인선을 무대로 장편소설 [협궤열차]를 썼다. 소설의 일부를 살짝 엿본다.
"협궤열차 타봤어?"
그녀가 느닷없이 물었다. 나는 무슨 물음인가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걸 한번 타보고 싶어서. 요전번에도 트럭하고 부딪쳐서 넘어졌다면서?"
류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열차가 그런 식으로 넘어지는 것이 어쩌다 없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불현듯 역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일었다. 그것은 욕망에 가까웠다.
시끌벅적 장터에서 푸짐한 한 상 차림
여행객은 소래역사관에서 장시간 역사 공부를 마친 후 도로를 건너 소래포구로 향한다. 그 전에 잠깐 소래철교 아래의 장도포대지(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를 답사해도 좋다. 이곳은 조선 고종 16년에 화도진을 축조할 당시 함께 지은 포대이다. 포대지 바닷가에 서면 좌측으로 협궤열차가 다니던 소래인도교, 우측으로 신형 전철이 오가는 소래철교가 사이좋게 한눈에 들어온다. 전철이 지날 즈음 다리 아래로 어선이 들어오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포대지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시장기를 느껴 소래포구 재래뱃터 어시장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전어, 새우, 꽁치 굽는 냄새가 머리채를 붙잡고 주꾸미, 꼴뚜기, 산낙지에 각종 조개가 손목을 잡아 이끈다. 꽃게, 대하, 아귀, 갈치, 우럭 등 생물 시장과 젓갈 시장을 거쳐 활어회 시장을 지나는 동안 소래포구 상인들의 외침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시장을 돌다가 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이들은 일회용 접시에 생선회와 양념장을 받아들고 어물전과 갯벌 사이 좁은 통로에 라면 박스 등을 깔고 앉아 시끌벅적하게 주안상을 편다. 기왕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드럼통으로 만든 상이라도 설치했다면 좋았을 것을.
소래포구 재래뱃터 어시장을 한 바퀴 돈 여행객들의 양손에는 누구 할 것 없이 꽃게나 대하 한 상자, 또는 새우튀김이 한 봉지씩 들려 있다. 그래도 어깨가 무겁지 않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맛을 보여주겠다는 다짐 때문이리라.
소래포구 꽃게
갤러리
여행정보
가는 길
수도권 전철 4호선 오이도역이나 인천지하철 1호선 원인재역에서 수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소래역사관(인천광역시 남동구 아암대로 1605, 전화 032-453-5630)을 방문하려면 소래포구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자가운전으로 찾을 경우 제2경인고속도로 시흥IC에서 월곶 방향 → 소래대교 → 소래포구, 또는 경인고속도로 도화IC → 시청 → 구월동 → 소래포구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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