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aw 운전도 안했는데 사고를 책임져? (Scrap)
2014.07.28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 2000년 3월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6개월 전에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총 30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A가 당시 사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사고차를 운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A씨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계를 더 뒤로 돌려보자.

A는 새로운 승용차를 구입하기 위해 2년 동안 돈을 모아왔다.
꿈에 그리던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그간 정들었던 애마도 중고차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차만 괜찮은 가격에 팔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던 차량을 살 수 있는 ‘실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A씨는 지인으로부터 믿을 수 있는 중고차 딜러를 소개받았다.
딜러를 만난 A씨는 그가 제시한 가격에 만족하며 자동차 열쇠를 넘겼다. 거래는 성사됐다.
이제 A씨에겐 새로 주문을 넣은 차만 기다리며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A씨로부터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아 중고차 매장으로 이동 중이던 딜러가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그것도 본인 과실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A씨는 당황했지만 딜러가 “자신이 알아서 사고처리를 하겠다”고 말해 이를 믿고 넘어가기로 했다.
명의이전 등 행정적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상호간 거래가 성사된 후이니 이제 딜러 소관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사고 피해자들이었다. 사고차의 운전자인 딜러와 차 소유주인 A씨 두 명 모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고차의 명의자는 맞지만 사고차를 직접 운전하지도 않았고, 사고발생 장소에 있지도 않았던 A씨는 그저 황망할 따름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은 “중고차 딜러와 함께 A씨 역시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04. 4. 28. 선고 2004다10633 등)
이유는 이렇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조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주체, 즉 운행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에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즉, 자동차 운행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사고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았더라도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차량을 직접 운전하지 않더라도 해당 차량 운행에 관련된 것을 ‘운행지배’라 하고, 운행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운행이익’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단·절취운전은 물론 △사업상 직장 동료나 가족들이 차를 운행하는 경우 △자신의 차를 세차업자, 수리업자, 엔진오일 교환업자 등에게 맡긴 경우 △대리운전 혹은 A씨 사례와 같이 자동차를 매매할 때 명의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딜러에게 차를 맡긴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위와 같은 경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차주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차와 열쇠의 관리상태, 보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운행이 가능하게 된 경위, 보유자와 운전자와의 관계, 운전자의 차량반환 의사유무, 무단운전에 대한 피해자의 주관적인 인식유무, 운행시간과 장소 등 객관적이고 외형적인 여러 사정을 종합해 운행자성(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판단하게 된다.
우리 대법원은 무단·절취 운전의 경우에는 대체로 자동차 보유자의 운행자성을 부정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자동차 보유자가 무단·절취 운전을 용인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했다고 판단하면 보유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세차업자, 수리업자, 세차업자, 급유업자, 주차장업자 등에 대해서는 각각의 계약에 의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위탁받은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이들을 보유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고객(자동차 소유자)의 운행자성을 부정한다.(대법원 1987. 7. 7. 87다카449, 2002. 12. 10. 2002다53193, 1996. 6. 28. 96다12887 등 참조).

그렇다면 A씨의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 딜러가 A씨로부터 위탁받은 자동차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자동차를 매매할 때 매도인과 매수인 중 누구에게 운행자성이 인정되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금완전결제와 이전등록서류의 교부여부에 있다. A씨는 자신의 중고차를 매도하면서 중고차 딜러로부터 자동차 대금도 지급받지 않았고, 이전등록에 필요한 서류도 건네주지 않은 채 그저 딜러만 믿고 자신의 승용차를 인도했다. 딜러는 그 차를 매장으로 가져가던 중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은 자동차를 매도·인도했다 하더라도 대금이 완전히 결제되지 않았고 이전등록서류도 주고받은 적이 없다면, 매도인은 자기의 명의로 운행할 것을 허용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자동차를 매도·인도하고 대금을 받은 뒤 이전등록서류까지 내어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록 매수인이 이전등록을 하지 않은 채 운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운행지배권은 매수인에게 이전된 것이므로 매도인에게는 운행자책임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80. 6. 10. 80다591, 대법원 1998. 5. 12. 97다49329 판례 등).

이제 자신이 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교통사고로 인한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항상 자동차의 관리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타인에게 맡길 때에도 늘 조심해야 한다. 특히, 중고차를 팔 때 위의 A씨 사례처럼 안일한 대처로 큰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자. A씨는 새 차 사려다 있던 차 부서지고, 고생해서 모은 돈까지 날렸다. 누구든 방심하면 A씨처럼 될 수 있다.
[면책공고]구체적 사실관계의 입증정도 및 법적 견해의 차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경제신문 최진석 기자․법무법인 이우 김학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