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최근 상가시장엔 일종의 편견(?)이 자리잡았다. ‘세입자(임차인)는 피해자, 건물주(임대인)는 가해자’라는 명제다. 정부가 상가권리금 양성화, 법정 임대차기간 확대 등의 방침을 밝혔고, 그간 권리금을 떼이거나 계약만료 전 내쫓겨 피해를 본 상인도 속속 등장하며 생겨난 분위기다. 일부 상인들은 자신의 권리금을 가로챈 건물주, 계약을 무시하고 내보낸 임대인을 규탄했다. 각계에서 관련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임대인도 상당하다. 일부 몰지각한 건물주 때문에 모두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논리다. 반면 세입자라고 해서 전부 권리금을 떼이고 들어오자마자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피해자는 아니다. 특히 권리금의 경우 매출을 속여 ‘잘 나가는 가게’로 포장한 뒤 다음 세입자가 낸 거품 낀 돈을 챙기는 악덕 임차인도 만만찮다. 상가시장의 ‘착한’ 임대인과 ‘나쁜’임차인들을 사례로 풀어봤다. ▶ 세입자에 사례금 주거나 월세 안 올리는 임대인 = 5년 전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연면적 160.5㎡, 지하 1∼지상 3층짜리 빌딩을 10억원에 매입한 오민석(가명ㆍ52) 씨. 그가 사들인 건물은 당시 1층에 신문보급소가, 2∼3층엔 사무실이 있었고 지하는 텅빈 상태였다. 총 임대보증금은 7500만원, 월 임대료는 400만원대였다. 연 5% 수준인 임대수익률이 낮다고 판단한 오 씨는 5000만원가량을 들여 건물 내ㆍ외관을 보수하고 임차인을 새로 들였다. 현재 이 빌딩은 작은 무역회사가 입주해 전체를 사용 중이다. 오씨는 기존 임차인의 계약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른 점포를 알아봐야 할 그에겐 한달 치 평균 매출인 300만원 가량을 현금으로 쥐어줬다. 기존 입주인도 이 건물의 가치를 유지해 준 만큼 ‘그동안 있어줘 고맙다’는 의미의 사례금이었다. 그는 “자영업자들은 기본적으로 약자”라며 “기존 세입자가 새 건물에 입점해 장사가 안정되는 기간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서울 신촌 상권 활성화를 위해 건물주들이 세입자와 손 잡았다. ‘신촌상권 임대료 안정화를 위한 협약’이 그것이다. 이 협약은 지역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권 침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만들어진 결과다. 이에 따라 건물주 9명이 보유한 건물 13채에 들어온 점포 50~60곳이 혜택을 본다. 관할 지자체도 추가 설득을 통해 건물주의 참여를 늘리기로 했다. 협약에 의거, 건물주는 임대차 계약기간엔 월세와 보증금 인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 현재 신촌 지역 임대계약은 1년 단위로 맺어지고 있다. 건물주들은 상인들과 상생을 위해 계약이 끝나도 향후 5년 간 임대료 인상은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착한 임대인’에 이름을 올린 연예인도 있다. 차인표ㆍ신애라 부부다. 이들이 2008년 신축한 연면적 2925.58㎡, 지하2∼지상6층 건물의 임대료는 주변의 절반 수준이다. 건물엔 어린이 관련 회사만 들어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부가) 사회공헌 일환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고자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권리금 떼 먹는 임차인 = 나쁜 임차인의 대표적인 유형은 권리금을 노리고 매출이나 손님 수를 부풀리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들을 ‘권리금 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작년 서울 강남의 약사 이 모(여)씨는 약국 이전을 알아보다 선배가 운영하던 약국을 인수했다. 처방조제건수가 100건이 넘는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권리금 1억 3000만원을 줬다. 하지만 실제 조제건수는 하루 30~40건에 불과했다. 시세의 3배가 넘는 권리금을 이미 줘 버린 이씨는 피해 구제방법을 알아봤으나 변호사에게 ‘권리금 피해는 인정 못 받는다’는 자문을 받고 이를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는 약국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2년 12월엔 소셜커머스(전자상거래상 공동할인구매) 영업으로 손님이 많은 것처럼 가장해 높은 권리금을 받고 점포를 넘긴 혐의(사기)로 허 모(38)씨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허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의 적자가 계속되자 그해 1~2월 소셜커머스로 정상가의 60~70%대 할인 쿠폰을 발행해 일시적으로 많은 손님을 모았다. 그는 할인행사로 손님이 북적거리는 3월 중순 이 사실을 모르는 박 모(가명ㆍ32)씨에게 시세의 갑절수준인 4300만원의 권리금을 받고 미용실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권리금을 정할 때 점포 양도인이 언급하는 매출액은 전표가 있더라도 절대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귀띔했다. ▶ 전문가들 “ ‘상파라치’ 도입해야” = 시장 전문가들은 상가 권리금을 명시한 표준계약서가 통용되더라도 전(前) 임차인의 이같은 횡포를 막을 방법은 현재로썬 마땅찮다고 입을 모았다. 몰지각한 임차인과 결탁해 매출 부풀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브로커들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권리금이 오가는 과정에서 법정 최고 중개수수료율(0.9%)의 열 배가 넘는 폭리를 취하고 있다. 장경철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시쳇말로 ‘딴 사람은 총을 맞아도 상관없다’는 이들의 행태가 상가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주 요인”이라며 “이쪽 분야에도 점포 편법거래를 신고하는 ‘상파라치(상가전문 파파라치)’제도를 도입해 제보ㆍ신고자의 비밀을 보장해주고 신고금액의 일정부분을 인센티브로 주는 방안 등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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