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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은 ‘꼰대 상사’ 얄미운 언행에 스트레스, 상사는 꼰대 취급 받을까 전전긍긍(Scrap)

Tony the 명품 2017. 2. 22. 14:06


입력 : 2017.02.21 16:49

[Story: 부하직원은 ‘꼰대 상사’ 얄미운 언행에 스트레스, 상사는 꼰대 취급 받을까 전전긍긍]
 

/일러스트=안병현

“기획팀장 선배 별명은 ‘대장’이에요. 우두머리 뜻하는 대장(大將)이 아니라 소화기관 대장(大腸)이요. 같은 말이라도 그 선배 입만 거치면 ‘똥’이 돼 나온다는 뜻입니다.”

서울 역삼동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민철(32·가명) 대리와 동료는 ‘대장 증후군’을 호소한다. 얽히고 싶지 않은 한 선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이 회사로 이직한 김 대리는 지난달 말부터 이 ‘병’을 앓기 시작했다. 발단은 ‘부서 생활은 할 만하느냐’던 ‘대장’의 질문이었다. 김 대리는 “출퇴근이 합리적이라 좋다. 할 일만 잘 끝내면 퇴근이 자유로워서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답했다.

며칠 후 팀 동료가 찾아왔다. 부장·대장과 동석한 식사 자리에서 듣기를 대장이 “김민철 대리만 보면 참 부럽다. 부장님 잘 만나서 출퇴근도 마음대로 하고, 아이에게 신경 쓸 시간도 많더라. 우리 딸 어렸을 땐 놀아주지도 못했는데”라고 했단다. 김 대리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서서 해명하기도 애매해 참아야 했다. 팀원들은 “통과의례라 생각하라”며 김 대리를 위로했다.

물꼬를 튼 ‘대장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기획 회의에 낼 아이템을 미리 점검하겠다”면서 입사한 지 몇 달 안 된 후배 팀원들만 모아 단톡방(단체카톡방)을 만들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올라오면 “나도 이걸 생각했었다”면서 아이템을 쏙쏙 빼 임원에게 보고했다. 도쿄로 출장을 갔을 땐 “부장님이 긴자(銀座)에서 파는 ‘구야 모나카(일본 화과자)’를 좋아하신다”고 귀띔하면서 “사오는 김에 내 것도 하나 부탁한다”고 슬쩍 숟가락 올렸다. 화과자값 3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월말 부서 회식 날, 김 대리는 불행히도 ‘대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소고기가 익어가는 족족 불판을 쓸어가면서도 “좀 탔다” “촉촉함이 덜하다” 얄미운 말을 쏟아냈다. “고기는 ‘투뿔(1++)’인데 굽는 사람이 별로”라는 둥 썰렁한 농담도 이어갔다.

숯이 식어갈 때쯤 ‘대장’이 말했다. “우리 회사에 ‘꼰대’가 너무 많지 않아?” 김 대리는 “지금 자기소개 하시느냐”며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끓어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곤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장’의 자화자찬과 후배들의 침묵이 기약 없는 공방을 이어가던 때, 술기운 올라 혀끝이 꼬부라진 ‘대장’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말이야, 나는 꼰대 아니지?”



tvN ‘미생(未生)’의 한 장면. 원인터내셔널 자원팀 부장인 마부장(손종학)은 폭언, 욕설, 성희롱, 남녀 차별, 인신공격을 일삼는 ‘꼰대’로 묘사된다. ‘더 테이블’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꼰대 평균 연령’은 50.2세. 극 중 마부장은 48세다. /tvN

아는 척·위해주는 척·있는 척
꼰대 인증 ‘3척 세트’

나도 혹시 꼰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꼰대’라는 단어 뜻은 ①‘늙은이’를 이르는 은어, ②‘선생님’을 이르는 학생들의 은어다. 뜻을 추려보면, 나이 많은 ‘기성세대’이면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혹은 가르치려 하는) 사람이다. 어원을 두곤 여러 설(說)이 존재한다. 주름 자글자글한 ‘번데기’의 경상도·전라도 방언인 ‘꼰데기’에서 유래했다는 설, 프랑스어 ‘콩테(comte·백작)’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설 등이 있다.

‘미생’(tvN) ‘김과장’(KBS) 등 직장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불고 있는 ‘꼰대 담론’의 성격은 후자 설에 더 들어맞는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공신(功臣)에게 백작·공작 등 작위를 수여했다. 일제강점기엔 친일파도 이 작위를 받게 됐다. 조선인에겐 나라 팔아먹고 ‘콩테’가 된 이 역적 무리가 눈엣가시였을 터. 따라서 권력에 아첨하면서 뻔뻔하게 살아가던 이들을 일컬어 ‘콩테’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을 보통 ‘꼰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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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중인 직장을 배경으로한 드라마 ‘김과장’. /KBS

나이·직급보다는 ‘인간성’ 문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꼰대
요리 덜 시키게 아욱죽 먼저 주문
월말 부서 회식은 ‘아욱죽 테러’

부장님 좋아하는 화과자
귀띔해주며 日출장길
자기 것까지 사오라는 팀장

“요즘 젊은 애들은 말이야…”
다짜고짜 반말하며 아랫사람 하대

꼰대는 대인 관계에서 ‘나’를 중심에 두려는 이기주의와 나이·지위·경험에서 오는 ‘우월 의식’이 결합한 결과다. 직장인 이보람(30·가명)씨는 월말마다 찾아오는 부서 회식이 끔찍이도 싫다. ‘아욱죽 테러’라고 부르는 이 회식은 보쌈·족발을 전문으로 하는 서소문의 한 한식당에서 늘 열린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이지만, 스무명에 달하는 부서원은 이곳에서 마음 놓고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후식으로 시켜 먹는 ‘아욱죽’을 일단 20개 주문해요. 배가 어느 정도 차야만 보쌈, 족발, 낙지볶음 같은 요리값이 덜 드니까요. 4명씩 앉는 테이블인데 족발은 8명당 한 접시예요. 법인카드로 결제하면서 생색은 또 얼마나 내는지.” 대화 주제는 ‘패기(?氣)’다. “IMF 때 직장 생활해봤느냐”면서 젊은 사원들 패기를 지적하거나, 부서원 한두 명을 콕 찍어 꼬투리 잡아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낸다.

‘더 테이블’이 취업 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꼰대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내 말대로만 하라며 우기는 스타일’(23%) ‘까라면 까라는 식의 상명하복 사고방식’(20%) ‘내가 해봐서 안다는 전지전능 스타일’(16%) 등이 꼽혔다. ‘가장 듣기 싫은 꼰대어(語)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어딜 감히’라는 답이 18%로 가장 높았다. 이어 ‘내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17%) ‘요즘 젊은 애들은 말이야’(17%) ‘내가 너만 했을 때는 말이야’(17%) ‘왕년에 나는 말이지’(13%) 순으로 나타났다. 결국 꼰대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아는 척’ ‘위해주는 척’ ‘있는 척’, ‘삼(三)척’이었다.

직장인 750명 설문
84% “꼰대는 나이 아닌
인간성의 문제”

91%가 “난 꼰대 아니다”라지만
90%가 “사내에 꼰대 있다”

노소(老少)의 문제로 치부하기 쉽지만, 꼰대의 본질은 ‘사람’에 있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꼰대가 아니라, 자기만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꼰대다. ‘꼰대를 결정짓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4%가 ‘인간성’이라고 답했다. ‘직급’(7%) ‘나이’(4%) 등 물리적 조건은 전부 합해도 10% 남짓했다. ‘직장에 멘토로 삼고 싶은 선배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41%)고 답했다. 직장인 신재천(27)씨는 “선배라고 해서 무조건 싫은 게 아니다. 인생 멘토로 삼고 싶은 선배도 많다”면서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일부 선배 때문에 ‘꼰대’ 문제가 더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안병현

‘꼰대 과대망상’ 호소하기도


‘꼰대 담론’이 확대되면서 ‘꼰대 과대망상’을 호소하는 직장인 또한 많아졌다.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이 꼰대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1%가 ‘아니다’고 답했지만, ‘꼰대 취급을 받을까 봐 걱정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세 명 중 한 명(34%)꼴로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대다수가 스스로는 ‘꼰대가 아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도 동의할지는 확신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꼰대 취급받지 않으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느냐’는 질문엔 45%가 ‘되도록 말수를 줄이고,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려 했다’고 답했다. 이어 ‘반말, 화내기 등 권위주의적인 언행을 삼가려 했다’(24%) ‘조언을 할 때 감정은 최소화하고, 실무 위주 조언만 하려고 했다’(20%)가 꼽혔다. 직장인 구자용(48)씨는 “경영학 책들은 ‘수평적으로 소통하라’고 권하지만 현실에선 입을 닫을수록 신임을 얻는다”면서 “부서 책임자로서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IT 기업 사내 상담사로 일하는 김경진(41)씨는 “몇 년 사이 부하 직원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장년층이 늘어났다”고 했다.

/일러스트=안병현

꼰대의 반대말은 ‘어른’


전문가들은 원인으로 ‘문화 지체’를 꼽는다. 군대식 기업 문화에 길든 기성세대와 민주적 기업 문화를 기대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 시차(時差)가 존재한다는 것. 한국노동연구원 김기선 박사는 “근무 효율성보다는 근로자가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왔던 것이 한국 기업 문화”라면서 “공사(公私) 구분이 사라지고 사생활 개념도 모호하다. 이 관성이 새로운 문화와 마찰을 빚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꼰대의 특징은 치기(稚氣)”라면서 “입으로는 민주적·합리적을 외치면서 언행 불일치가 심한 기성세대가 많다. 꼰대 담론이 사라지지 않는 것 역시 기성세대가 ‘어른스러움’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고베여자대학 문학부 명예교수인 우치다 다쓰루는 저서 ‘어른 없는 사회’에서 “경쟁 지향적인 교육 시스템이 ‘나’만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점점 아이들이 돼 간다”면서 “지금의 미성숙한 젊은이들이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미성숙한 노인’이 된다”고 우려했다. 저서 ‘쓴맛이 사는 맛’에서 무책임한 노년 세대를 비판했던 문화운동가 채현국씨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늙어서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 꼰대라고 비난했던 선배의 모습이 어느새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